독일의 대중교통 배리어프리 현황
베를린은 2009년부터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로 운행되고 있어요. 저상버스가 곧 대중버스인 셈이죠. 2017년에는 트램까지 모두 저상화되어 휠체어 탑승객이 혼자 이용할 수 있도록 바뀌었고, 버스뿐 아니라 정류장 또한 배리어프리 기준에 충족하도록 6600여 개의 버스정류장을 개선했다고 해요. 독일 전국 16개 정부는 2022년 1월 1일까지 모든 지자체가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를 구현할 것을 의무로 하는 여객 운송법 제8조 1항을 발표했고, 그에 맞춰 환경을 개선해왔습니다.
(1) 보편적 디자인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리한 대중교통은 어떤 디자인일까요? 먼저, 버스․지하철․지상철의 입구가 넓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승․하차 할 수 있어요. 특히 버스의 경우 승강장 정차 시 출입문 쪽으로 버스가 살짝 기울어져 휠체어 탑승객․유아차 사용자들의 출입을 돕습니다.
입구와 가까운 위치에는 교통약자 전용 좌석과 회전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요. 특히 휠체어가 들어가는 공간에도 좌석을 최소 2개 이상 배치해 누구든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는데, 이는 장애인 좌석 조성으로 자칫 교통약자 특혜라거나 낙인효과 등의 부정적 관점을 없애기 위한 시도였다고 해요. ‘평등할 권리’를 원칙으로 대중교통을 디자인해 심리적 장벽을 제거한 셈이죠. (저는 트램을 탔을 때, 입구 근처에 영화관 좌석처럼 접었다 폈다 의자가 있길래 '효율적이다'라고만 생각했는데, 심리적 장벽을 없애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니!)
교통약자를 위한 정차 스위치와 손잡이 위치 또한 다양한 높이로 설치되어 있구요. 접었다 펼 수 있는 수동식 발판의 생활화로 휠체어 탑승객과 유아차 사용자들이 버스와 트램을 쉽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발판은 고리를 잡고 그냥 인도 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되는데, 수동식이라 잘 고장나지 않고 비교적 신속하게 펼치고 접을 수 있어서 일반 승객도 손쉽게 조작할 수 있어요. 실제로 운전사가 일반 승객들에게 발판을 펴고 접어 주도록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리고 수동식 발판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엔 가운데 문을 먼저 열어 휠체어 탑승객부터 승․하차 할 수 있도록 합니다.
(2) 교통약자 이동권에 대한 성숙한 사회적 의식
아무래도 발판 조작을 하다보면 시간이 늦어질 때가 있는데, 복잡한 출퇴근 시간대에도 불평하는 승객이 잘 없다고 해요. 휠체어 이용자나 보조자가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거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경우도 없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람으로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인 이동권을 행사한 것이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독일 국민들이 이러한 사회적 질서에 동의하고 있어요. 급하면 본인이 내려서 다른 버스를 타거나 뛰어간다고.. 보편적 이동권이 실현되는 나라의 풍경은 이러하군요!
(3) 개별적 이동수단(Fahrdienst) 제공
배리어프리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독일의 제도입니다. '사회복지법’ 제83조 이동에 대한 지원(Leistungen zur Mobilität)에 따라 학교· 직장·병원에 갈 때나 여가활동을 할 때 개별 이동수단을 제공해주고 있어요. 장애인 증명서에 ‘이동 제약(Gehbehinderung)’을 뜻하는 “G”표식이 있으면 본인부담금이 없고, 관할 사회복지청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용료는 건강보험사에서 이동수단 업체에 지불한다고 해요.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2018년부터 독일 전국에 설치된 ‘보완·독립적 사회참여상담(Erganzende unabhangige Teilhabeberatung, EUTB)’ 기관에서 관련 무료 상담을 제공해준다고 합니다.
국내 대중교통 배리어프리 현황
국내에서도 다양한 대중교통 배리어프리 정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 버스의 경우 저상버스 보급률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저상버스(시내버스)의 2023년 전국 평균 보급률은 38.9%에 불과하다고 해요. 그나마도 수도권 서울이 66.7%로 가장 높고, 평균을 웃도는 지역은 대구(46.5%), 세종(46.4%), 강원(41.9%), 대전(39.7%) 등 5곳에 그쳤습니다. 저상버스가 가장 적은 지역 울산은 보급률이 14.6%에 불과하며 인천도 18.8%로 20%가 채 되지 않는 비율이죠. 특히 울산은 배차간격이 95.2분에 달했는데요. 휠체어 승객이나 유모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저상버스 한 대를 놓치면 최대 1시간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셈입니다.
반면, 저상 버스가 많이 도입된 서울의 경우도 장애인인들이 편히 버스를 이용하고 있진 못합니다.
우선, 버스정류장의 불편함 때문인데요. 도로 연석(인도 턱) 높이가 40cm에 달하는데, 이는 휠체어를 위한 적정 높이의 두 배가량이라고 해요. 정류장 도로의 길이가 협소해서 휠체어 방향을 바꾸기도 어렵고, 버스가 딱 맞춰서 서주지 않으면 타기 어렵습니다. 버스 발판을 잘 이용하지 않아, 고장나 있는 경우가 많고 기사님들도 발판 이용 교육을 받지만, 쓰는 경우가 정말 드물어 버벅이게 된다고 해요. 따라서 발판 이용에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고, 휠체어 승객이 다른 승객들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이어지게 됩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인구밀도 탓도 있을 것 같아요. 찾아보니 베를린의 인구밀도가 4,349명/km² 인데 비해 서울은 15,533명/km²에 달했습니다. 서울에서 보통의 출퇴근 풍경을 떠올려보면 건장한 성인들도 몸을 가누기 여려울 정도로 많은 인구가 몰리죠. 보편적인 출퇴근 시간에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장애인은 당연히 이동이 어려운 사회. 이건 단순히 이동에 대한 제약일 뿐 아니라, 업을 비롯한 다른 사회참여에 대한 배제로 이어집니다.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생산적이지 않으면 도태되어 버리기 쉬운 서울의 어떠한 면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독일 전역에 배리어프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장애인을 배려하자는 취지만은 아니다..휠체어 탑승자를 비롯해 유아차 사용자, 노인과 어린아이 건강한 성인까지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베를린 시청의 배리어프리 담당자가 한 말입니다. 배리어프리를 위한 움직임들이 특정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엔 국민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와 닿았어요.
[참고 자료]
(1) 민세리, "자동차의 나라, 독일의 배리어프리 저상버스", 에이블 뉴스
(2) 박은, "[배리어프리, 공공디자인에서 인권을 찾다] ⑤독일, 대중교통의 완전한 배리어프리 실천", 전북일보
(3) 성지혜, 독일의 무장애 이동성 정책, 복지타임즈 |